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빌헬름 2세 (문단 편집) === 그 외 === 판단력은 최악이었는데 전쟁으로 지친 제국 전체가 들끓을 때도 상황 판단을 못했다. 군대는 끝까지 황제를 지지하며, 그 힘으로 시위대를 진압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오히려 군대도 황제를 증오하며 대놓고 명령을 거부했다. 아연실색한 황제는 "명령을 어기느니 차라리 죽겠다던 깃발의 맹세는 어떻게 되었는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답변은 "폐하. 오늘날, 깃발의 맹세는 한낱 단어가 되었습니다."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조용히 해외로 망명하는 것밖에 없었다. 청일 전쟁 말기에 앞으로 황인종이 서구의 백인(白人) 사회를 위협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황화론|황화론(黃禍論)]]을 펴기도 했고, 그것을 뒷받침한다고 만든 게 바로 [[혈액형 심리학]]. 자세한 내용은 [[http://flager8.egloos.com/2522542|카이저와 황화론]] 참조. 위의 황화론은 다분히 영국을 견제하고 독일이 팽창하기 위함이었다는 분석 역시 존재한다.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급속도로 발전하며 팽창중하여 러시아까지 꺾은 동방의 [[일본 제국]]을 주 적으로 삼고[* 사실 일본은 유럽 입장에선 별 것도 아닌 국지전급 전쟁 하나하나마다 제국 전체의 국운을 걸고 도박 중이었다. 유럽이 그렇게 떠들던 일본의 팽창과 황화론은 사실 속 빈 강정이었고,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순진한 대중들이거나 이를 이용해먹으려는 정치인들 뿐이었다.], 일본과 청나라의 근대화가 완료된다면 온 유럽이 그 무시무시한 인구에 눌려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주장이었다. 이를 통해 주요 유럽국 중 [[러시아 제국]]을 제외하면 가장 동방에 있는 독일이 국력을 키워 [[튜튼 기사단]]의 전례와 같이 동방의 위협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명분을 만들고, 겸사겸사 독일을 견제하고자 [[영일동맹]]을 체결하여 동양에 힘을 실어주는 영국을 매도했다는 것이다. 당장 [[황화론]] 문서의 최상단에 있는 그림을 보자. 용을 타고 날아오는 부처(일본)를 막아야 한다며 유럽을 선동하는 강인한 모습의 독일이 묘사되어 있다. 반면 뒤에서 소극적으로 방패를 땅에 받쳐놓은 영국이 대비된다. 황화론이 [[독일 제국|누구]]에 의해 주장되었는지, [[대영제국|누구]]를 매도하기 위해 쓰였는지를 한번에 알 수 있다. 여담 항목에서도 자세히 서술하겠지만 황화론과 일본에 대한 적대적인 시각으로 인해 대한제국의 [[고종(대한제국)|고종]]이 [[을사조약]] 이후에 서구 열강의 지도자들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당시 열강 중 사실상 유일하게 '카이저 폰 코레아(Kaiser von Korea)'라고 쓴 답장까지 써주면서 공감을 표현해주기까지 했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 같은 개념. 그 이상의 조치는 어려웠지만 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